제20회 전국청소년논술토론한마당

논술토론한마당소개

청소년, 정치를 말하다. 제21회 전국청소년 논술토론한마당
21회 주제제안문

21회 한마당 주제선정에 대한 안내문입니다.

주제제안문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의 세상은 이제 오지 않는다”
<21회 전국청소년논술토론 한마당-「청소년, 정치를 말하다」 주제제안문>



장면 1.
현재의 ‘BC’는 시대를 나타내는 ‘before Christ’가 아니고, ‘AD’ 역시 라틴어 ‘Anno Domini’가 아니다. 기원전(BC)과 기원후(AD)를 나타냈던 약호는 이제 패러디한 ‘Before Corona(코로나 전)와 ’After Disease(코로나 후)로 바꾸면 더 실감을 느끼는 말이다.
우리는 거대한 사건을 거친 후 그 사건 이전과 그 사건 이후로 시간을 표기하고, 인식한다. 예를 들면 산업혁명 전후와 2차대전 전후를 큰 연대 표기로 사용하고 있다. 그 사건의 중요성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 역시 전 세계를 모든 면에서 바꾸어 놓았다. 인간을 가장 핍박하는 상황인 ‘전쟁’도 ‘2차 대전’ 이후로는 국지전의 형태로 일어나서 인류 전체를 위협하지 않았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중국이 2019년 12월 31일 세계보건기구(WHO)에 정체불명의 폐렴이 발생했다고 보고한 지 181일째인 2020년 6월 28일 현재 누적 확진자 1008만 6926명을 기록하고, 50만 1993명이 사망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확진자와 사망자는 주춤하는 기세도 없이 계속 늘어나지만, 세계는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속수무책, 팔짱만 끼고 안타까운 사태를 바라만 볼 뿐이다.

2020년 6월 28일 현재, ‘코로나19’가 발생한 나라는 전 세계 188개국으로 늘어났다. ‘코로나19’ 1000만 확진자 시대의 거대 확진자 발생국을 보면 미국 260만 명, 브라질 132만 명, 러시아 63만 명, 인도 52만 명, 그리고 영국에 31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적지 않은 확진자가 발생한 이들 나라는 과거 20세기와 21세기 현재에도 선진국,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다.

선진국은 다른 나라보다 정치ㆍ경제ㆍ문화 따위의 발달이 앞선 나라를 이르고, 강대국 또한 병력이 강하고 영토가 넓어 힘이 센 나라를 뜻한다. 그러나 이들 나라는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맞이해서는 최소한의 국가 구실조차 하지 못했다. 도리어 이들 나라는 21세기에 다시 한번 ‘국가란 무엇인가’와 일상 재난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를 주었다. 그동안 이 나라들은 자본의 독점을 최대한 허용한 ‘신자유주의’ 최극단과 정치에서 상대를 허용하지 않는 ‘극우주의’ 신봉자들이 정치를 담당하는 나라들이다.

아이러니하게 평상시에는 외부로부터 강하게 자기 나라를 지켰지만, 위기 시에는 국가의 존립 근거 가운데 가장 중요한 가치인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극한의 내부 모순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많은 정치학자나 사회비평가들은 이 상황을 키운 원인은 다름 아니라 외부의 위협이 아니라 각 나라의 국내 정치라고 지적한다. 자신의 존립과 안전을 담당하는 고도의 정치 행위를 특정 집단과 특정 정치인에게 모두 맡기고, 일상의 정치에 고개 돌리지 않은 국민의 ‘정치 무관심’과 비판력 없이 ‘가짜 뉴스’나 특정 정파에 휘둘려 자신의 일상을 챙기지 못했던 ‘현실의 무지’가 이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정치’에서는 ‘정치가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그 정치가를 선택한 ‘시민의 책임’도 적지 않다.

현대 사회에서 ‘정치’의 기본 개념과 역할은 거창하지 않다. 『민주주의』 1장에서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는 사회의 가치, 즉 희소한 자원을 권위를 가지고 배분하는 것이다.’라며 그 자원을 배분할 담당자를 고용하고 해고하는 일을 하는 중요한 판단을 시민이 직접 하는 제도가 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는 현대 정치의 지향점이다.”며 짧고 명확하게 정의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사태가 우리에게 에둘러 보여주는 깨달음은 ‘사회의 희소 자원을 배분하는 담당자(정치가)’를 사회의 주인인 시민 자신이 스스로 판단하고 채용(투표)하는 최소한의 행위가 정치이고, 이 정치력을 올바로 행사하는 실천이 자신과 사회를 지킨다는 사실이다.

장면 2.
2030년이면 우리 사회의 일자리에는 사람보다 인공지능이 많을 것이라는 전망이 있다. 현재의 불평등은 인공지능 시대를 거치면서 ‘프레카리아트(저임금·저숙련 노동에 시달리는 불안정 노동 무산계급을 가리키는 신조어)’라는 새로운 계급의 양산을 통해, 자본과 노동의 불평등 현상은 인류 역사상 극단에 달할 것이라는 절망의 예고를 내놓고 있다.

그동안 1, 2, 3차 산업 혁명을 거치면서 인류는 불안한 가운데서도 인간과 기계의 균형을 나름 맞춰 왔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중심이 되는 4차 산업 혁명 시대에는 이 균형이 빠르게 무너진다고 예측한다. 4차 산업혁명이 주는 이 불행한 예측에 앞서 우리에게 먼저 다가온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는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것을 무엇인가?’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기회를 준다. 그동안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과 기계의 효율성’이 밀어부친 경쟁력에 치어 잊고 살았던, ‘우리가 사는 데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과 대답에 대해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번 ‘코로나19 팬데믹’ 사태를 통해 나름 답도 얻었다. 우리 사회를 유지하는 건 ‘경쟁력’이 아니라 ‘공존력’이라는 답을. 위기는 바닥이고, 바닥에서는 본질이 드러난다.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의 바닥에 떨어져 가장 많이 들은 단어가 ‘공적’ 마스크, ‘공공’ 재난 지원금, ‘공공’ 병원, 지난 50여 년 ‘신자유주의’ 시대를 살면서 잊었던 ‘공공성’이었다. ‘공공성’을 강조한 사회와 국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피해를 최소화했다.

인류는 650년 전 중세의 ‘흑사병(페스트)’이라는 재앙을 만나 많은 희생 끝에 지구는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당시 중국에서 시작한 것으로 추정하는 ‘흑사병’은 몽골의 서방 원정으로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전 유럽으로 확산한 후 유럽 인구 절반을 희생자로 만들었다. 그 뒤의 유럽의 변화는 역시 ‘공공성’이었다. 일정한 시간이 지난 15세기에 이탈리아 북부에 공화국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제가 나타나고, 문학, 미술, 종교 모든 부분에서 근본 변화가 일어난다. 모두의 삶은 연결되어 있고, 무엇이 중요하고, 필요한가를 많은 사람은 뒤늦게나마 깨달았다.

650년이 지난 지금, 현재의 지구사회 역시 폐쇄사회라면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이렇게 빨리 번지지도 않고, 나라마다. 도시마다, 통제하면 ‘코로나19’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는 연결되어 있다.

인간은 사회를 떠나 홀로 살 수는 없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가 큰 흐름인 현 세계는 산업을 중심으로 모든 국가가 연결되어 있고, 생활은 도시로 집중하고, 인간의 모든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며, 자연은 인간에게 대상이 되었다. 인간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 되었다.

산업화 이후의 가치, 즉, ‘경쟁의 가속화’, ‘극단의 개인주의와 물질주의’, ‘일상의 속도화’와 ‘생활의 건조함’은 ‘코로나19 팬데믹’ 사태에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이제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이제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를 새롭게 정립하고, ‘미래’를 단순하게 그려갈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지’로 개척하고 협력해야 할 시기임을 각성하게 한다.

‘코로나19 펜데믹’ 사태는 우리의 삶의 자세에 대한 근본 성찰을 요구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새로운 담론과 새로운 규칙을 만들어야 하고, ‘좋은 삶’, 즉, ‘훌륭한 삶’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 1장에서 “완전한 공동체는 국가이며, 국가는 단순한 생존을 위해 형성되지만 ‘훌륭한 삶’을 위해 존속한다.”고 했다. 보태어 노암 촘스키는 “민주주의의 미래 말인가요? 시민들에게 달려 있죠.”라고 우리의 선택을 강조했다.

정치의 민주화는 경제를 민주화하고, 일상의 문화를 민주화하고, 다시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이끄는 노둣돌이다.

한국의 청소년들이여, 목소리를 높여 다시 한번 외치자. “정치, 내 손 안에 있습니다.”